종언(14세기~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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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5-14 04:48 조회22,3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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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리스는 1453년 5월 29일(현재의 그레고리우스력으로는 6월 7일)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는 13만 이상의 육해군과 우르반의 거포란 신무기를 동원해 콘스탄티노플을 압박했다. 동로마군은 외국 용병과 싸울 수 있는 일반 시민 모두를 합쳐도 고작 7천여 명밖에 안 되었지만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지휘 아래 있는 힘을 다해 약 50여 일간 항전했다. 그러나 끝내 압도적인 병력과 무기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메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았고, 터키식 이름인 이스탄불로 개칭했다. 다만, 이 시대에도 그리스어 이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터키어 이름인 이스탄불이 모두 사용되었고 서구에는 여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이 사용되었다. 터키인들 역시 이스탄불이라는 명칭보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터키식 이름인 콘스탄티니예를 선호했다. 이스탄불은 1930년에 와서야 도시 공식 명칭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그리스가 이 도시의 연고권을 주장하면서 강제 접수하려 했으나 무스타파 케말(케말 아타튀르크, 훗날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막아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수도는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겨졌다.
메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았고, 터키식 이름인 이스탄불로 개칭했다. 다만, 이 시대에도 그리스어 이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터키어 이름인 이스탄불이 모두 사용되었고 서구에는 여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이 사용되었다. 터키인들 역시 이스탄불이라는 명칭보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터키식 이름인 콘스탄티니예를 선호했다. 이스탄불은 1930년에 와서야 도시 공식 명칭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그리스가 이 도시의 연고권을 주장하면서 강제 접수하려 했으나 무스타파 케말(케말 아타튀르크, 훗날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막아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수도는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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