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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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5-14 04:46 조회17,5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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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리스(그리스어: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콘스탄티누폴리스[*], 라틴어: Constantinopolis 콘스탄티노폴리스[*], 영어: Constantinople 콘스탄티노플[*])는 터키의 도시 이스탄불의 옛 이름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바꾸기 전의 원명은 비잔티움(라틴어: Byzantium 비잔티움[*], 그리스어: Bυζαντιον 뷔잔티온, 비잔티온[*])이었다.
목차 [숨기기]
1 개요
2 이름
2.1 도시 이름의 각국별 음차 표기
3 역사
3.1 고대 말기의 번영(4세기~6세기)
3.2 새로운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도시
3.3 암흑시대로부터 재흥까지
3.4 황금시대(9세기~11세기)
3.5 제국의 함락과 황폐(12세기~13세기)
3.6 종언(14세기~15세기)
4 같이 보기
개요[편집]
콘스탄티노플은, 330년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비잔티온(Βυζάντιον, Byzantion) 땅에 세운 도시이다. 이 땅은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동서 교역의 요충지로 천연의 항만인 금각만을 끼고 있었다. 당시의 도시 이름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를 의미한다.
395년에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써 「새로운 로마」이자 「제2의 로마」라는 의식이 뿌리내렸다. 동로마 제국의 융성과 함께 도시는 인구 30만~40만 명을 헤아리는 동방정교회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 번영을 누렸고,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 「모든 도시의 여왕」, 「세계의 부(富)의 2/3이 모인 곳」이라고 불렸으며, 또한 고대 건축물이 보존된 대도시로써 위용을 떨쳤을 뿐 아니라 정교회의 수장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위치한 정교회의 중심지로써 비잔틴 문화의 중심이었다. 도시의 수호 성인(守護聖人)은 성모 마리아로 알려져 있다.
콘스탄티노플은 강고한 성벽으로도 유명했다. 동로마 제국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외부의 적이 공격해 왔지만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그러나 1204년에 제4차 십자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었고 이는 도시의 쇠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1453년에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동로마 제국은 멸망, 이후 도시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다만 공식 명칭은 '이스탄불'로 바뀌는 1930년대까지 줄곧 콘스탄티노플이었으며 오스만의 술탄 또한 스스로를 로마 황제라 칭했다) .
현재에도 동방정교회 및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이스탄불에 두고 있다. 동방정교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정식 칭호는 「새로운 로마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 온 땅의 총주교」로, 이 도시에 붙인 「새로운 로마」라는 이름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이름[편집]
한국에서는 흔히 영어 이름인 Constantinople을 그대로 읽어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읽으며(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도시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전 라틴어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 고전 그리스어로는 「콘스탄티누폴리스」(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라고 읽었으며, 중세 그리스어 및 이를 계승한 현대 그리스어 문어에서도 이를 그대로 이어 읽었다.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콘스탄디누폴리」(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라고 읽고 있다. 1453년에 오스만 제국이 도시를 점령한 뒤, 현재의 「이스탄불」(İstanbul)이라는 터키어 이름보다는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라고 불렀다.
동로마 자체적으로는 「새로운 로마(고전 라틴어: 노바 로마Nova Roma, 고전 그리스어: 네아 로메Νέα Ῥώμη)」, 「그 도시(고전 그리스어: 헤폴리스ἡ Πόλις)」 등으로 불렸다. 외부에서는 러시아어 등 슬라브 계통의 사료 속에서 「짜르그라드」(Царьград, 황제의 도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바이킹들은 고대 노르드어로 「미크라가르드」(Miklagarð, 위대한 도시)라고 불렸다. 한자로는 「황부」(皇府)에 해당하는 글자도 사용되었다.
도시 이름의 각국별 음차 표기[편집]
고전 그리스어 재건음 중세 그리스어
근현대 그리스 문어 현대 그리스어 고전 라틴어 재건음
콘스탄티누폴리스 콘스탄티누폴리스 콘스탄디누폴리
콘스탄디누우폴리 콘스탄티노폴리스
영어 동방 정교회(미사 때) 러시아어 오스만어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폴리스 콘스탄티노폴리 콘스탄티니예
역사[편집]
고대 말기의 번영(4세기~6세기)[편집]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에 기원을 둔다. 그리스의 메가라 출신이었던 비자스(Byzas)가 창건했다고 하며, 초기 비잔티움이란 이름도 비자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최소한 기원전 600년경에는 작은 촌락들이 발달했으며, 이미 고대로부터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잇는 동서교역의 요충지로서, 또한 천연의 항구인 금각만을 끼고 있었다.
비잔티움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이 폴리(i Poli, "도시")라 불렀는데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 존속했던 기간 대부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유럽 최대 도시였고 제국인들이 세계 중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동방의 페스켄니우스 니게르와 로마 제국을 놓고 내전을 벌였을 때 비잔티움은 니게르 편에 서서 세베루스군에 저항했다. 당시 비잔티움은 천험의 지형과 다수의 함대, 프리스쿠스라는 이름의 기술자가 고안한 각종 기계 장치, 군사와 백성의 격렬한 저항으로 무려 3년간이나 농성했으므로 도시가 함락되고서 세베루스 황제의 보복 조치로 페린투스(Perinthus)시의 일부로 격하된 후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메세 가도가 놓였다.
비잔티움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퇴임 이후 내전에서 처음에는 막시미누스 다이아 황제에게 지배 받았다.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리키니우스 황제가 콘스탄티누스 1세와 만나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는 사이에 리키니우스의 영역으로 쳐들어갔으나 도리어 신속하게 돌아온 리키니우스에게 반격당해 죽었다. 이때 리키니우스는 11일간 포위 공격해 비잔티움을 점령했다.
목차 [숨기기]
1 개요
2 이름
2.1 도시 이름의 각국별 음차 표기
3 역사
3.1 고대 말기의 번영(4세기~6세기)
3.2 새로운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도시
3.3 암흑시대로부터 재흥까지
3.4 황금시대(9세기~11세기)
3.5 제국의 함락과 황폐(12세기~13세기)
3.6 종언(14세기~15세기)
4 같이 보기
개요[편집]
콘스탄티노플은, 330년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비잔티온(Βυζάντιον, Byzantion) 땅에 세운 도시이다. 이 땅은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동서 교역의 요충지로 천연의 항만인 금각만을 끼고 있었다. 당시의 도시 이름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를 의미한다.
395년에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써 「새로운 로마」이자 「제2의 로마」라는 의식이 뿌리내렸다. 동로마 제국의 융성과 함께 도시는 인구 30만~40만 명을 헤아리는 동방정교회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 번영을 누렸고,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 「모든 도시의 여왕」, 「세계의 부(富)의 2/3이 모인 곳」이라고 불렸으며, 또한 고대 건축물이 보존된 대도시로써 위용을 떨쳤을 뿐 아니라 정교회의 수장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위치한 정교회의 중심지로써 비잔틴 문화의 중심이었다. 도시의 수호 성인(守護聖人)은 성모 마리아로 알려져 있다.
콘스탄티노플은 강고한 성벽으로도 유명했다. 동로마 제국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외부의 적이 공격해 왔지만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그러나 1204년에 제4차 십자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었고 이는 도시의 쇠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1453년에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동로마 제국은 멸망, 이후 도시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다만 공식 명칭은 '이스탄불'로 바뀌는 1930년대까지 줄곧 콘스탄티노플이었으며 오스만의 술탄 또한 스스로를 로마 황제라 칭했다) .
현재에도 동방정교회 및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이스탄불에 두고 있다. 동방정교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정식 칭호는 「새로운 로마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 온 땅의 총주교」로, 이 도시에 붙인 「새로운 로마」라는 이름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이름[편집]
한국에서는 흔히 영어 이름인 Constantinople을 그대로 읽어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읽으며(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도시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전 라틴어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 고전 그리스어로는 「콘스탄티누폴리스」(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라고 읽었으며, 중세 그리스어 및 이를 계승한 현대 그리스어 문어에서도 이를 그대로 이어 읽었다.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콘스탄디누폴리」(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라고 읽고 있다. 1453년에 오스만 제국이 도시를 점령한 뒤, 현재의 「이스탄불」(İstanbul)이라는 터키어 이름보다는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라고 불렀다.
동로마 자체적으로는 「새로운 로마(고전 라틴어: 노바 로마Nova Roma, 고전 그리스어: 네아 로메Νέα Ῥώμη)」, 「그 도시(고전 그리스어: 헤폴리스ἡ Πόλις)」 등으로 불렸다. 외부에서는 러시아어 등 슬라브 계통의 사료 속에서 「짜르그라드」(Царьград, 황제의 도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바이킹들은 고대 노르드어로 「미크라가르드」(Miklagarð, 위대한 도시)라고 불렸다. 한자로는 「황부」(皇府)에 해당하는 글자도 사용되었다.
도시 이름의 각국별 음차 표기[편집]
고전 그리스어 재건음 중세 그리스어
근현대 그리스 문어 현대 그리스어 고전 라틴어 재건음
콘스탄티누폴리스 콘스탄티누폴리스 콘스탄디누폴리
콘스탄디누우폴리 콘스탄티노폴리스
영어 동방 정교회(미사 때) 러시아어 오스만어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폴리스 콘스탄티노폴리 콘스탄티니예
역사[편집]
고대 말기의 번영(4세기~6세기)[편집]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에 기원을 둔다. 그리스의 메가라 출신이었던 비자스(Byzas)가 창건했다고 하며, 초기 비잔티움이란 이름도 비자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최소한 기원전 600년경에는 작은 촌락들이 발달했으며, 이미 고대로부터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잇는 동서교역의 요충지로서, 또한 천연의 항구인 금각만을 끼고 있었다.
비잔티움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이 폴리(i Poli, "도시")라 불렀는데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 존속했던 기간 대부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유럽 최대 도시였고 제국인들이 세계 중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동방의 페스켄니우스 니게르와 로마 제국을 놓고 내전을 벌였을 때 비잔티움은 니게르 편에 서서 세베루스군에 저항했다. 당시 비잔티움은 천험의 지형과 다수의 함대, 프리스쿠스라는 이름의 기술자가 고안한 각종 기계 장치, 군사와 백성의 격렬한 저항으로 무려 3년간이나 농성했으므로 도시가 함락되고서 세베루스 황제의 보복 조치로 페린투스(Perinthus)시의 일부로 격하된 후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메세 가도가 놓였다.
비잔티움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퇴임 이후 내전에서 처음에는 막시미누스 다이아 황제에게 지배 받았다.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리키니우스 황제가 콘스탄티누스 1세와 만나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는 사이에 리키니우스의 영역으로 쳐들어갔으나 도리어 신속하게 돌아온 리키니우스에게 반격당해 죽었다. 이때 리키니우스는 11일간 포위 공격해 비잔티움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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